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블로 에스코바르 (문단 편집) === 쫒기는 범죄자 생활 === 그러나 정치인으로 주가를 올릴 때 즈음, 법무부 장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가 그의 범죄행위와 경찰을 상대로 한 매수 등 비리행위를 [[https://www.youtube.com/watch?v=-96--UNUjDc|폭로]]한 데다가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작전으로 결국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쫓겨났다. 그 길로 정치생명은 끝나고 추적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범죄자가 되어 쫓기는 와중에 본격적으로 각성하여 법무부 장관 보니야를 대로에서 암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콜롬비아군]]과 경찰, 사법부, 정치인, 게릴라 등을 매수하고, 응하지 않으면 '''사지를 찢거나 불태워 죽이고, [[IED]]를 설치'''하는 등, 테러도 불사하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으며, 수도인 보고타에 '''자신의 사병을 잠입시켜서 전투'''까지 벌이는 등 당시 콜롬비아 정부의 진을 뺐다. 현실적으로도 [[메데인 카르텔]]보다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도 없었기 때문에 정치생명은 끝났어도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 [* 당연히 메데인 일대를 장악한 만큼 여러 정치인들과 인연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우리베 대통령이 있다. 에스코바르가 아주 돈이 많고 군사력을 지니고 있어서 에스코바르한테 찍히면 죽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소속 정당도 같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어쨌든 인프라 확충에는 도움을 주고 빈민층들에게도 돈을 나눠주다 보니 메데인에 나쁠 것이 없던 인간이어서 여러모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에스코바르 일당이 몰락하자 우리베는 에스코바르 딜당의 잔당을 일부 흡수해서 우익 민병대 조직을 창설하는 데 앞장섰고, 2002년 대선 때 자유당을 탈당한 다음에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우리베는 에스코바르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고 발뺌하기 바쁘기는 하다.] 추적당하는 신세가 된 그는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갚겠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의 눈치로 인해 콜롬비아 정부가 그의 사면을 거절했다. 그리고 협상을 거쳐 자수를 한 후 자신이 지은 교도소에 '''스스로 수감됐다'''. 그런데 그 교도소는 말이 교도소지 웬만한 특급 호텔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면적이 무려 40만 평에 달했고, 교도관도 에스코바르 자신이 직접 선발했다. 교도소 안에는 정원, 수영장과 당구장, 볼링장, 나이트클럽, 바도 딸려 있었다. '''게다가 외출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가서 외출하고 왔다.''' ~~이쯤 되면 수감 생활이 아니라 휴가를 보내는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게 에스코바르를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알게 된 에스코바르는 이 호화 교도소에서 탈옥(?)을 한다. 게다가 이때부터 에스코바르가 자기를 체포하고, 방해하려는 관료, 기자까지 마구 죽여 대다 보니 콜롬비아 정부는 에스코바르의 범죄를 파헤칠 수가 없었다. 특히 에스코바르가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사회 고위층을 매수하거나 협박을 가해서 모가지가 날아갈 위험도 있었고, 더군다나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에스코바르를 잡으려 해 봐야 에스코바르 자신이 상당한 경호원과 군사력 등을 가지고 있었기에 '''폭탄이나 총에 맞아서 죽을 판이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좌익 게릴라 무장단체들 상당수와 휴전상태에 돌입하려 했던 참이었지만 여전히 내부 사정은 어지러웠다. 이런 이유로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고, 매일 같이 춤추면서 놀아재끼는 삶을 살게 된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마약 밀매 사업은 여전히 벌였다. 그런데 이때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 더욱 압력을 가한다. 미국은 에스코바르가 미국에 코카인을 수출함으로써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미국 내 마약 중독자 수를 늘리는 데 기여한 국가적 차원의 적이 감옥에 수감되지 않고 '''호텔에서 매일 밤 술 마시고 춤추고 놀며 자기 나라에 마약 밀매를 하며 지내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콜롬비아 정부에 에스코바르를 미국으로 보내라고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당시 콜롬비아 내에서도 에스코바르에게 당한 사람이 수천 명씩이나 있기 때문에 여론도 좋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에스코바르의 부하 조직원 두 명이 에스코바르와 시비가 붙어서 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콜롬비아 정부가 에스코바르를 다른 감옥으로 이감을 시키려고 했고, 결국 에스코바르는 탈옥을 하게 된다. 이제 콜롬비아 정부에서 수배자 신세가 된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주민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도피 생활을 했다. 그런데 자기 가족이 독일에서 입국이 거부되자,[* '''물론 파블로 에스코바르 본인이 입국이 지연되자 독일 대사관에 전화해, 모든 독일인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대통령궁 근처에 220파운드의 C4를 터트려버린다. 대부분 다친 사람은 어린이들이었고, 이 사건으로 콜롬비아인들에게 에스코바르에 대한 분노가 커져서 이제 모두 이 천인공노할 인간을 쫓아 죽여버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콜롬비아 정부도 더는 참지 않고 수사기관과 군대를 동원하여 미국 수사기관들이랑 협조하여 에스코바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에스코바르는 추적을 피해 은신처에서 숨어 지냈는데 '''자기 자식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여서'''[* 실제로 에스코바르의 아들 인터뷰를 보면 자기 자식에게는 매우 자상했던 아버지는 맞는다. 어차피 바깥에서 망나니 짓을 해도 자기 자식이나 부모에게 자상한 부모, 효자효녀인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니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 에스코바르는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던 탓인지 자식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사랑이 너무 과한 탓인지 아들이 언론을 통해 아버지가 사살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그 개새끼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 내가 직접 죽이겠다."라면서 생방송을 통해 보복을 맹세했는데 결국 이름을 숨기면서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다만 아버지의 범행을 제대로 알게 된 이후로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 반성하고 있다.] 보고타에 있던 아들과 약 20초간 통화를 하다가 위치가 발각되어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DEA]]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투입되었으며 1993년 12월 2일, 탈출 와중에 포위되자 소총으로 DEA 요원들과 콜롬비아 특수부대원들과 교전하다가 그들이 쏜 3발의 총알에 맞고 사망했다. 그는 경호원 엘 리몬과 같이 있었는데 총격전 와중에 리몬은 사살되고 그도 지붕을 통해서 탈출하다가 총에 맞아 사살된 것이다. 가장 치명상은 귀를 뚫고 간 총알이었는데 이것이 자살인지 확인 사살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에스코바르의 아들은 아버지가 언제나 했던 말이 '절대 적에게 죽지는 않겠다.'였다면서 자살을 주장하지만, 당시 [[미합중국 법무부 마약단속국|DEA]]요원이었던 스티브 머피는 갖고 있던 총으로 자살했다면 근거리에서 총알을 맞게 되므로 화상이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자신이 사진을 찍을 때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면서 100% 확실하게 군인들에게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드라마 [[나르코스]]에서도 군인들이 복수로 확인 사살한 것으로 나온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a/Death_of_Pablo_Escobar.jpg|사살 기념 촬영('''시체 주의''')]], [[http://i.dailymail.co.uk/i/pix/2015/09/17/16/2C6DE4A700000578-3238278-image-m-49_1442502871779.jpg|스티브 머피가 보인다('''시체 주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